잠언 산책

미움과 분노로부터 자신을 지키라 (잠 25:21-28)

 


(잠 25:21) 네 원수가 굶주리거든 그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잠 25:22) 그리하면 그는 머리에 숯불을 둔 것같이 부끄러워하고,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실 것이다.

(잠 25:23) 북풍이 비를 몰고 오듯, 험담하는 혀는 분노를 초래한다.

(잠 25:24) 옥상 한 구석에서 사는 것이 다투는 아내와 같이 사는 것보다 낫다.

(잠 25:25) 먼 나라에서 보내 온 좋은 소식은 목마른 영혼에 냉수와 같다.

(잠 25:26)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지고, 샘이 썩는 것과 같다.

(잠 25:27) 꿀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도 좋지 않다.

(잠 25:28)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성벽이 무너진 성과 같다.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을 생각하면 무덤이 떠오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스트레스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잘 다루지 않고서는 절대 웰빙할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부분 사람 때문입니다. 스스로 기대하는 바에 못 미쳐서 불만족스러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고,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미움과 분노가 생깁니다. 본문을 보면, 서로 다른 교훈의 말씀 같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원수(21), 험담하는 사람(23), 다투는 아내(24), 잘난 체 하는 사람(27)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대입니다. 모두 가까운 사람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미움과 분노를 크게 촉발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가까울 수록 실망의 절벽도 높고, 미움과 분노가 일으키는 스트레스가 큽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결별하면 되지 않습니까? 혼내 주면 되지 않습니까?라 할 수 있지만, 성경은 "자신을 다스리라"(28)고 말씀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가까운 사람으로 인한 미움과 분노는 꼭 상대방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 안에 오래토록 자리 잡아온 상처를 그가 자극했을 뿐입니다. 그도 잘못했지만 그와 상관 없는 문제가 내 속에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싸우고 헤어지는 방법 만으로 스트레스는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둘째, 헤어지고 피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안전한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거리로 떨어져 자신도 지키고 상대방도 유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합니다. 결별하거나 여전히 가까이 있으면 두가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화병이 생기거나 고통을 주는 사람이 우리의 전인격을 계속 흔들어 결국 무너뜨릴 것입니다.  

 

셋째, 미움과 분노가 자라는 동안 자신을 지키는 가장 능동적이고 현명한 방법은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먼 나라에서 보내 온 좋은 소식은 목마른 영혼에 냉수와 같다."(25) 무슨 말씀입니까? 먼 나라에서 보내온 좋은 소식은 '뜻밖의 소식,' '스스로가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우리에게 미치게 된 덕(혜택)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사심으로 사람을 향한 용서와 악에 대해 승리하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사람 때문에 겪게 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조금 완화되었다 언제가 폭발하거나 병들 것입니다. 목마른 영혼, 괴로운 영혼, 미움과 분노로 휨싸인 영혼을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께 향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신 용서와 승리를 우리는 외칠 수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용서와 승리가 임하는 길을 이루신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중물 기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건강하게 만나고 사랑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나도 아픈 사람이고 그도 아픈 사람임을 깨우쳐 주옵소서. 긍휼의 마음으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을 대하게 하옵소서. 문득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에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십자가 승리와 용서로 자신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